교실 너머, 정책의 온도 · 교육정책
AI 교과서를 교사가 직접 만든다
자율성일까, 새 업무일까
현장 교원이 집필하는 16개 AI 과목 인정교과서가 2028년 학교에 들어온다. 좋은 수업을 만드는 권한이 교사에게 돌아온다는 기대와, 책임만 더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함께 살펴봤다.
AI 디지털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학교에 또 하나의 AI 교과서 이야기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결이 조금 다르다. 기업이 만든 플랫폼을 교실에 넣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수업을 해 온 교원이 집필진으로 참여해 AI 과목의 교재를 만드는 사업이다. 제목만 보면 반가운 변화다. 하지만 교사가 ‘주도한다’는 말이 정말 수업의 권한을 뜻하는지, 아니면 교사에게 개발 책임까지 얹는 말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 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10개 시도교육청이 협업한다.
- 공모를 통해 초등 6개, 중학교 2개, 고등학교 8개 등 모두 16개 AI 관련 과목이 선정됐다.
- 현장 교원이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2027년 1학기 시범 적용과 시도교육청 인정 심의를 거쳐 2028년 3월 전국 학교 도입을 목표로 한다.
왜 ‘교원 집필’이 중요한가
AI는 변화 속도가 빠르다. 교과서가 기획되고 심의를 거쳐 학교에 도착하는 사이에 기술과 서비스가 달라질 수 있다. 더구나 같은 AI 개념도 초등학생에게 설명하는 방식과 고등학생에게 가르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무엇을 아는가만큼, 어떤 학생에게 어떤 순서로 가르쳐 봤는가가 중요하다.
이 점에서 현장 교사의 참여는 의미가 있다. 수업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활동인지, 학교 기기로 실제 실행되는지, 학생이 어디서 막히는지, 개인정보나 저작권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교사는 매일 확인한다. 개발자가 기술의 가능성을 말한다면 교사는 수업의 가능성을 검증한다. 교원 집필이 이름만 빌리는 수준이 아니라면, 교재가 화려한 기능 설명서가 아니라 ‘가르칠 수 있는 책’에 가까워질 여지가 크다.
기존 AI 디지털교과서 논쟁에서 자주 제기된 질문도 여기서 다시 읽을 수 있다. 기술이 수업을 끌고 가는가, 교사가 교육적 목적에 맞춰 기술을 선택하는가. 이번 사업은 적어도 방향상 후자에 가깝다. 교과서의 출발점을 플랫폼이 아니라 수업 경험에 두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좋은 취지가 저절로 좋은 결과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교과서를 쓰는 일은 수업 자료 몇 장을 만드는 것과 다르다. 교육과정 분석, 내용 집필, 오류 검증, 저작권 확인, 학생 수준 조정, 시범 수업과 수정이 반복된다. 이 일을 정규 수업과 생활지도, 행정업무 사이에 끼워 넣는다면 ‘교원 주도’는 금세 ‘교원 희생’으로 바뀐다.
집필 교사에게 충분한 연구 시간과 보상, 기술·법률 검토 인력이 제공되는지 공개되어야 한다. AI의 답변 오류와 편향, 데이터 보호, 생성물의 저작권처럼 교사 혼자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는 공동 책임 구조가 필요하다. 최신 기술 동향을 반영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인력과 검토위원을 추천한다고 하지만, 기술적 정확성만큼 중요한 것은 교육적 타당성이다. 어느 한쪽의 검토가 다른 한쪽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
교사에게 펜을 쥐여 주는 것과, 펜을 쥘 시간을 보장하는 것은 같은 정책이 아니다.
학생에게는 무엇이 달라질까
잘 만들어진다면 학생은 AI를 단순히 ‘써 보는’ 수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데이터가 어떻게 분류되는지, 결과가 왜 틀릴 수 있는지, 편향된 답을 어떻게 의심해야 하는지, 생성물을 어디까지 자기 것으로 말할 수 있는지를 교과의 흐름 안에서 배울 수 있다. 학교급에 맞춘 16개 과목이 개발되는 만큼, 초등의 체험과 중·고등의 원리·활용을 잇는 연속성도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학교의 기기와 네트워크, 담당 교원의 전문성 차이를 방치하면 같은 교과서를 두고도 학습 경험은 크게 벌어진다. 한국교육개발원도 초·중등 교실의 AI 활용에서 교사별 활용 차이, 교육과정과 맞지 않는 문항, 특정 교과 편중 등을 어려움으로 짚었다. 책을 만드는 일과 모든 학교가 그 책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게 만드는 일은 별개의 과제다.
따라서 2027년 시범 적용은 ‘잘 작동했다’는 홍보용 절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수업 준비 시간, 학생의 실제 이해도, 학교별 장비 격차, 윤리·안전 문제를 공개적으로 점검하고 수정하는 기간이어야 한다. 시범학교의 성공 사례뿐 아니라 실패와 중단의 이유도 다음 판본에 반영돼야 한다.
나는 교원이 AI 교과서를 직접 만드는 방향에 찬성한다. 교실을 모르는 사람이 만든 완성품을 교사가 전달만 하는 구조보다 건강하다. 다만 이 정책의 성패는 ‘교사가 참여했다’는 명단이 아니라, 교사의 판단이 최종 내용에 얼마나 남았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집필과 검토 시간을 공식 업무로 인정할 것. 둘째, 시범 적용 결과와 수정 내역을 공개할 것. 셋째, 교과서를 의무적인 단일 정답이 아니라 학교가 선택하고 보완할 수 있는 공공 자산으로 만들 것이다. 이 조건이 없다면 교원 주도라는 말은 책임을 현장에 넘기는 포장이 될 수 있다.
2028년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
전국 도입 목표는 2028년 3월이다. 아직 시간이 있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AI 교과서를 얼마나 빨리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누가 어떤 시간과 권한으로 만들며, 오류가 발견됐을 때 누가 고치고 책임지는가이다. 현장 교사가 방향키를 잡는 변화는 분명 기대할 만하다. 그 손이 수업과 서류 사이에서 지치지 않도록 만드는 것까지가 정책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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