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비는 없애준다는데, 서열은 그대로일까

국립대 무상화 정책 예산과 대학 서열을 상징하는 편집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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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 교실 너머, 정책의 온도

학비는 없애준다는데, 서열은 그대로일까


지방 국립대 등록금을 사실상 0원으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신입생 6만 명이 넘는 규모다. 여기까지만 보면 “드디어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진짜 해법을 찾았구나” 싶다. 지역균형 발전, 학벌 분산, 국립대 경쟁력 강화 — 그럴듯한 그림이 다 맞춰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말 이걸로 대한민국 입시의 오래된 벽이 흔들릴까? 아니면 학비 걱정 하나 덜어주는 사이, 정작 사라져야 할 문제는 그대로 남고 애꿎은 곳만 무너지는 걸까.

국립대 등록금, 진짜로 0원에 가까워진다

교육부는 5일 이재명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지역균형 장학금’ 도입을 공식화했다. 2027학년도부터 지방 소재 국립대 30곳 신입생 약 6만~6만 4,000명에게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등록금 전액을 국가장학금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무상교육이다. 지역인재장학금도 함께 확대해 지방 사립대에 진학하는 우수 학생 지원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3~5세 유아 무상교육·보육까지 2027년 전면 확대한다고 하니, 교육비 국가책임을 유아부터 대학까지 쭉 이어가겠다는 그림이다.

이 정책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거점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키워 지역 활성화를 이끌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핵심 교육 국정과제다. 지난 5일 3개 거점국립대가 우선 지원 대상으로 윤곽을 드러냈고, 성장엔진과 연계한 브랜드 단과대학 설립, AI·반도체 인재 양성 체계도 함께 강화한다. 학비 부담을 없애 지방대로 학생을 끌어오고, 그 대학 자체의 경쟁력도 서울대급으로 키운다는 두 축이 맞물리는 구조다.

‘서울대 10개’, 정말 될까

다만 숫자를 자세히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애초 정부가 내세운 서울대 10개 만들기 예산은 8,900억 원 규모였지만, 실제 신규 사업 예산은 1,60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글로컬대학 사업이나 라이즈(RISE) 사업 예산이 상당 부분 그대로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전체 지역 거점국립대 9곳 가운데 3곳만 우선 선정해 교당 1,000억 원가량을 집중 지원하는 방식이라, 시작 전부터 “왜 3곳만이냐”는 실효성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거점국립대 총장들조차 사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런 선별 방식이 오히려 대학 간 서열화를 새로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립대 총장 모임인 사총협 총회에서는 아예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는 현실론까지 나왔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말과 숫자의 간격

발표된 예산 8,900억 원

실제 신규 예산 1,600억 원

우선 선정 거점대 3곳 / 전체 9곳

국립대 무상화 대상 신입생 약 6만~6.4만명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도표 (2026년 4~8월 관련 보도 종합)

졸업장 한 장으로 줄 세우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학비를 없애는 건 입구를 넓히는 것이지 벽을 허무는 게 아니다.

결국 진짜 질문은 이거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졸업장이 취업 시장에서 갖는 프리미엄, 이른바 학벌의 유리천장은 예산 몇천억 원과 신속 선정 몇 곳으로 흔들릴 만큼 얕지 않다. 지방 거점국립대가 진짜 ‘서울대급’이 되려면 등록금 지원보다 훨씬 오래, 훨씬 많은 것이 쌓여야 한다. 연구 역량, 졸업생 채용 실적, 기업들의 인식 — 이런 것들은 한 정부의 임기 안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 정책의 분산 효과에는 기대를 걸면서도, “이걸로 서울대 쏠림이 정말 깨질까”라는 물음에는 아직 물음표를 붙여둘 수밖에 없다.

그 사이 지방 사립대는 벼랑 끝에 몰린다

더 시급한 문제는 따로 있다. 국립대만 등록금을 없애주면, 학생 수가 이미 줄어드는 지방 사립대는 신입생을 통째로 뺏길 처지에 놓인다. 실제로 정책 발표 직후 지역 사립대들 사이에서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반발이 거세게 나왔다. 대학생 교육의 80%를 담당해온 사립대들은 십수 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 규제로 이미 한계에 몰려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이번 발표 시점이 수시 원서 접수를 한 달 앞둔 시점이라, “사실상 정부가 입시에 개입한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전국교수노동조합은 “고등교육 전체에 대한 비전 없이 국립대만 골라 지원한다”고 꼬집었다.

여기서 솔직히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학령인구가 이렇게 가파르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모든 대학이 지금 규모 그대로 살아남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어차피 문을 닫을 대학은 닫을 수밖에 없는 흐름 속에 있다. 그렇다면 이번 정책은 결국 “어차피 정리될 자리를 국립대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그런 정리가 필요하다는 큰 방향에는 동의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밀려나는 게 하필 ‘사립대’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결정된다면, 그리고 그 타이밍이 수험생과 학교 모두에게 아무런 준비 기간도 주지 않는 식으로 던져진다면, 이건 정리가 아니라 그냥 방치다. 자연스러운 구조조정과, 정책이 떠민 급사(急死)는 다르다.

정리하면 —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구조조정 자체는 불가피하다는 큰 흐름과, 특정 대학군을 정책 발표 하나로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 방식은 별개의 문제다. 방향이 맞다고 해서 속도와 절차까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대통령은 입시 제도를 직접 만지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대입 제도 개편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분명히 했다. “교육, 입시 제도에 손 대서 칭찬받은 예가 없다”며, 조금만 건드려도 득 보는 쪽과 손해 보는 쪽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해 손대기가 너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객관식 수능이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정작 “바꾸라고 한 얘기는 아니다”, “나도 답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입시 제도라는 게 어느 쪽으로 손을 대든 누군가는 피해를 본다고 여기는 정도의 셈이다. 실제로 내신 5등급제 완화가 그랬듯, 제도 하나를 바꾸면 그 틈을 메우는 새로운 부작용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이 정부가 택한 방식이 흥미롭다. 입시 ‘제도’ 자체를 자꾸 손보는 대신, 그 위에 있는 구조 — 대학 서열, 학벌 프리미엄 — 를 흔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국립대 무상화와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결국 “9등급을 5등급으로 바꾸는” 식의 미시적 손질이 아니라, “서울대가 아니어도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좀 더 근본적인 접근이다. 입시 제도를 만지작거려서 이득도 손해도 아닌 소모전을 벌이느니, 대학 간 격차 자체를 줄이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맞는 방향일 수 있다.

대입 개편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짚어야 할 게 있다. 2025년 고1부터 내신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완화됐다. 학생 간 과도한 서열화와 경쟁을 줄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종로학원이 전국 일반고 1,695곳의 학업성취도 자료를 분석한 결과, 5개 주요 교과 평균 점수가 66.9점에서 70.4점으로 3.5점 올랐고, A등급 비율도 21.6%에서 24.1%로 늘었다. 1등급 구간이 9등급제 4%에서 5등급제 10%로 넓어지면서 변별력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고교 1·2학년 10명 중 9명은 여전히 내신 경쟁에 큰 부담을 느끼고, 10명 중 7명은 오히려 사교육비 지출이 늘었다고 답했다. 취지와 정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게, 종로학원의 반응이다. 변별력이 떨어졌다고 분석해놓고, 곧바로 내놓은 결론은 “내신 등급뿐 아니라 원점수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등급 하나로는 부족하니 원점수까지 챙기라는 얘기다.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결국 학생과 학부모가 “더 챙겨야 할 게 늘었다”는 메시지로 귀결되는 구조. 이게 사교육 업계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문턱을 낮추면 낮춘 자리에 새로운 불안을 채워 넣는다.

국립대 무상화, 분산 효과가 있을 거라는 데는 나도 동의한다. 학비 걱정 없이 지방 국립대를 선택할 수 있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 자체는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하지만 이게 진짜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해법이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 졸업장 한 장이 취업 시장에서 갖는 힘, 그 유리천장은 등록금 정책 하나로 무너질 만큼 약하지 않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방 사립대가 “어차피 사라질 대학이었다”는 식으로 정리되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학령인구 감소로 누군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건 인정하지만, 적어도 그게 준비할 시간도 없이, 정책 발표 한 번으로 벼랑 끝까지 떠밀리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신 5등급제도 마찬가지다. 제도를 아무리 손봐도, 사교육은 그 틈에서 자신들이 유리한 논리를 새로 만들어낸다. 종로학원이 “원점수도 챙기라”고 말하는 순간, 학부모들의 불안은 다시 시작된다. 이 철옹성이 정말 무너지려면, 등급 체계를 바꾸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방향은 맞다고 본다. 다만 그 방향이 실제로 벽을 허무는 데까지 이어지려면 지금보다 훨씬 오래, 훨씬 꼼꼼하게 가야 할 것 같다. 이번 정책들이 요란한 발표로 끝나지 않고, 몇 년 뒤에도 그 효과를 숫자로 확인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글은 교육부의 지역균형 장학금 발표와 관련 보도를 근거로 작성했습니다. 수치나 사실관계에 다른 점을 발견하시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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