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밥그릇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공정이라 부르나

급식 파업과 공정성을 상징하는 저울과 피켓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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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 교실 너머, 정책의 온도

아이들 밥그릇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공정이라 부르나


급식이 멈추고, 학교장이 앞치마를 두르고, 검찰이 기소하고, 교육청이 징계에 나선다. 대전 둔산여고의 급식 갈등을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학교의 소동’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조리실무사도, 교장도, 교사도, 공무원도 — 요즘 학교를 둘러싼 거의 모든 직군이 동시에 “더 정당한 대우를 달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각자의 요구는 저마다 다 나름의 근거가 있는데, 그 근거들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늘 아이들의 밥그릇인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둔산여고, 무슨 일이 있었나

2025년 3월, 처우 개선을 요구하던 조리실무사들이 준법투쟁 끝에 기습 파업에 들어갔다. 급식이 중단되고 전교생 단축수업, 식자재 폐기까지 이어졌다. 학교운영위원회는 저녁(석식) 급식을 중단하기로 의결했고, 당시 A 교장은 직접 보건증을 발급받아 앞치마를 두르고 3개월간 급식을 챙겼다고 한다. 그런데 검찰은 이 석식 중단 조치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직장폐쇄’로 판단해 A씨를 약식기소했고, 대전시교육청은 수사 결과를 통보받아 통상 절차에 따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A씨 측은 학운위 의결을 거친 적법한 조치였다며 정식 재판을 요구했고, 전·현직 교직원들의 집단 탄원이 이어지면서 교육청은 법원 판단이 나올 때까지 징계 의결을 보류한 상태다.

이 사건만 떼어놓고 보면 ‘적법한 대응이었는지 아닌지’를 다투는 법적 다툼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이건 학교라는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터져 나오는 더 큰 갈등의 한 장면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급식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리실무사를 포함한 학교비정규직(교육공무직)은 전국 80여 개 직종, 18만 명 규모다. 이들이 속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최근 몇 년간 거의 매년 총파업을 벌여왔다. 요구 사항은 대체로 비슷하다 — 최저임금 이상의 기본급, 방학 중 무임금 문제 해결, 근속임금 차별 해소, 명절휴가비를 기본급 비율로 정률제 전환. 실제로 조리사·교무·행정실무사가 포함된 ‘교육공무직 2유형’의 올해 기본급은 월 206만 6,000원으로, 월 최저임금(209만 6,270원)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조사도 있다. 이들 입장에서는 “학교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우리도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돼야 한다”는 요구인 셈이다.

그런데 교사도, 공무원도 같은 목소리를 낸다

같은 시기, 교원단체들도 비슷한 요구를 내놓고 있다. 교직수당은 2000년 이후 26년째 월 25만 원에 머물러 있는데, 전교조·교총·교사노조가 일제히 인상과 체계 개편을 요구서로 제출했고, 여기에 학교폭력 담당 수당 신설 요구까지 더해지면서 추정 총비용이 수조 원대로 거론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도 “공무원 임금이 민간 대비 83% 수준까지 벌어졌다”며 임금 6.6% 인상과 초과근무수당·정액급식비 인상을 요구했다. 다행히 2026년 교원 봉급은 3.5% 인상되며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큰 폭의 처우 개선이 이뤄지긴 했지만, 현장의 체감과 요구는 여전히 크다.

급식실도, 교무실도, 행정실도 — 학교 안의 모든 자리에서 “지금 이건 공정하지 않다”는 말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이번 정부 안에 승부를 본다”는 시선

이런 동시다발적인 요구 러시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치적 타이밍과 연결 짓는 해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던 기억이 있는 만큼, 노동계 우호적으로 여겨지는 현 정부 임기 안에 처우 개선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움직임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실제로 학교비정규직 노조는 신학기마다 총파업을 예고하며 협상력을 끌어올리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물론 이 해석에는 반론도 있다. 방학 중 무임금,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기본급, 26년째 동결된 수당처럼 구조적으로 오래 쌓여온 문제들은 정권과 무관하게 존재해왔던 것이고, 마침 지금 시기에 목소리가 커진 게 반드시 ‘정치적 타이밍 노리기’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이 글에서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결국 문제는 “무엇이 공정한가”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과 노력에 따른 보상이 정당하다는 믿음(능력주의) 자체가 실은 출발선의 차이를 가리는 착시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틀을 학교 안 갈등에 대입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보인다. 조리실무사들은 “정규직과 같은 노동을 하는데 왜 처우는 다르냐”는 형평성의 언어로 말하고, 교사들은 “26년째 그대로인 수당”이라는 정체된 보상의 언어로 말하고, 공무원들은 “민간 대비 격차”라는 상대적 박탈의 언어로 말한다. 학교장은 “학운위 의결을 거친 정당한 조치였는데 왜 내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느냐”는 절차적 정당성의 언어로 말한다. 다들 저마다의 논리로는 ‘공정’을 말하고 있는데, 그 공정의 기준이 서로 다르다.

생각해볼 지점 — 임금 격차 해소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과, 절차적 정당성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 그리고 재정 여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은 각각 나름의 타당성을 갖는다. 문제는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다 만족될 수 없을 때, 우리 사회가 어떤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 글에서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조리실무사들의 처우 문제도, 교장이 겪은 형사처벌 리스크도, 교사와 공무원들의 임금 정체도 각자 들여다보면 다 이유가 있는 이야기들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이런 갈등이 반복될 때마다 정작 그 사이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밥을 굶거나 대체식을 먹어야 하는 건 학생들이라는 사실이다. 어른들의 정당한 요구와 정당한 반박이 부딪히는 동안, 그 부딪힘의 비용을 아이들이 치르고 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공정’이라는 단어를 쓸 때,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한 번쯤 서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형평성인지, 절차인지, 상대적 격차인지, 아니면 그저 협상력의 문제인지. 이 글이 정답을 내놓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이런 질문을 한 번쯤 던져보고 싶었다. 다음에 또 이런 갈등이 생겼을 때는, 적어도 그 협상 테이블에 아이들의 밥그릇이 볼모로 오르지 않는 방법을 우리가 찾아냈으면 한다.

이 글은 둔산여고 급식 파업 관련 보도를 바탕으로, 조리실무사·학교장·교원 각각의 입장을 균형 있게 담으려 했습니다. 사실관계에 다른 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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