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은 떠났고, 청구서는 남았다

정책 책임자가 떠난 자리에 남은 청구서를 상징하는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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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 교육이슈

장관은 떠났고, 청구서는 남았다

교실 너머, 정책의 온도

2조 원을 쓴 정책이 실패하면, 누가 책임을 지나. 정답부터 말하면, 아무도 안 진다. 그 정책을 밀어붙인 장관은 임기 마치고 미국 대학교수로 자리를 옮겼고, 남은 건 채권자처럼 법원 문턱을 넘나드는 교과서 발행사들과, 아무 잘못도 없이 뒷수습을 떠맡은 학교 현장뿐이다. AI 디지털교과서(AIDT), 이 정책의 설계자는 떠났고 청구서만 남았다.

밀어붙인 사람은 이주호였다

AI 디지털교과서는 이주호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대표 작품이었다. 그는 2022년 11월 취임 이후 ‘하이터치, 하이테크(HTHT)’라는 구호를 내걸고 디지털 전환을 교육개혁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2025년 3월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영어·수학·정보 교과에 AI 디지털교과서를 전면 도입하겠다는 계획도 이 시기에 확정됐다. 학생들의 디지털 과몰입, 시력 저하,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교육계와 정치권에서 꾸준히 제기됐지만, 정책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밀어붙여졌다.

결국 브레이크는 국회에서 걸렸다. 2025년 7월 10일 국회 교육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낮추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교과서는 학교가 의무적으로 채택해야 하지만, 교육자료는 채택하든 말든 학교 재량이다. 이주호 전 장관은 바로 그 다음날인 7월 29일 임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책이 무너지는 걸 지켜본 게 아니라, 무너뜨린 채로 나간 셈이다.

정작 사업은 자율 선택으로, 숫자는 그대로 남았다

2026년 들어 정책 언어 자체가 통째로 갈아엎어졌다. ‘AI 디지털교과서’는 ‘AI 교육자료’로, ‘디지털 선도학교’는 ‘디지털활용선도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도입’이라는 말이 빠지고 ‘활용’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 이게 핵심이다. 전국 1,900개 학교가 디지털활용선도학교로 지정돼 있지만 결국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고르는 구조가 됐고, 실제 채택률은 2026년 3월 기준 약 32%였다. 세 학교 중 두 학교는 안 쓴다는 뜻이다.

문제는 정책 방향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미 들어간 돈과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투입된 국비만 5,300억 원, 인프라 설계 비용까지 더하면 2조 원 이상이 들어간 것으로 추산된다. AI 교과서 개발에는 14개 교과서 발행사와 7개 에듀테크 스타트업, 협력업체 50여 곳이 매달렸고, 여기 딸린 종사자만 9,000~1만 명이다. 천재교과서 관계자는 이 중 50~60%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청구서는 이주호 전 장관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개발실 불을 켜놓고 있는 발행사 직원들과 학교 현장이 나눠 갚고 있다.

숫자로 보는 AI디지털교과서 후폭풍

투입 국비 5,300억 원

총 투자 추산 2조원+

관련 종사자 9천~1만 명

고용 감축 우려 50~60%

손해배상 청구 2,000억 원

실제 채택률(2026.3) 약 32%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도표 (2025~2026년 관련 보도 종합)

발행사들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국가를 상대로 2,0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얼마 전에는 정부의 ‘선택적 사용 결정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도 제기했다. 결과는 각하.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이 소송 요건 자체를 갖추지 못했다며 본안 판단조차 하지 않고 사건을 끝냈다. 발행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하다. ‘의무 도입’을 전제로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게임의 룰이 중간에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룰을 정한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 없다.

학교와 교육청 담당자가 무슨 죄인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람들이 또 있다. 발행사 못지않게 억울한 건 학교 현장이다. 정책이 전면 도입에서 자율 선택으로 바뀌는 그 몇 달 사이, 학교는 이미 사놓은 스마트 기기와 무선망 인프라를 어떻게 할지 스스로 판단해야 했고, 교육청 담당 장학사들은 위에서 내려온 지침이 반년마다 바뀌는 걸 그대로 받아 학교에 다시 전달해야 했다. 정책을 설계한 사람도, 국회에서 법을 바꾼 사람도 아닌 이들이 정작 현장에서 학부모들의 항의와 발행사의 원망을 동시에 받아내고 있다. 17개 시도교육청 중 7곳은 AI 활용 가이드라인조차 없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던 것도, 이런 혼란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그대로 떠넘겨진 결과에 가깝다.

정책을 만든 사람은 임기를 채우면 떠나지만, 그 정책을 떠안은 학교는 떠날 수가 없다.

정책 설계자는 지금 미국에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게 있다. 지금 이 정책을 실무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최교진 장관이 ‘교육자료’로 격하시킨 장본인은 아니다. 법적 지위를 낮추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2025년 7월 10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이미 의결됐고, 최교진 장관의 취임은 그로부터 두 달 뒤인 9월 12일이었다. 국회가 결정을 내리고, 정권이 바뀌고, 새 장관은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자리에 앉았을 뿐이다. 발행사들이 낸 행정소송도 2025년 4월, 그러니까 이주호 전 장관이 아직 자리에 있을 때 이미 제기된 것이었다.

정작 이 모든 걸 만들어낸 이주호 전 장관은 2025년 7월 29일 퇴임하며 “학계로 돌아가 연구에 매진하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복귀했다. 그런데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2026년 4월부터는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ASU) 교수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확인된다. 같은 해 1월에는 국내 대학 총장단과 함께 ASU에서 열린 ‘대학교육혁신 총장단 회의’에 전 부총리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정책이 실패로 판명 나고, 발행사들이 소송을 걸고, 뒤이은 장관이 뒷수습을 하는 그 시간 동안, 정작 그 정책을 밀어붙인 당사자는 이미 다음 자리로 옮겨간 뒤였다.

확인해두면 — ① AI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 격하(교과서→교육자료)는 2025년 7월 10일 국회 의결 사안으로, 최교진 장관 취임 전에 이미 확정됐다. ② 서울행정법원의 각하 판결(2026년 7월 23일)은 발행사가 2025년 4월 제기한 행정소송의 1심 결과다. ③ 업계는 이번 각하보다, 앞서 예고한 헌법소원을 실질적인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그래도 취지 자체가 틀렸던 건 아니다

여기서 응원 일변도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AI 디지털교과서라는 발상 자체를 통째로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속도에 맞춘 맞춤형 교육, 교사의 행정업무 경감, 국내 교육 데이터를 지키면서 AI 역량을 키운다는 취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국내 에듀테크 산업이 이 사업을 발판 삼아 세계 시장에 나가려던 계획도 있었다. 문제는 취지가 아니라 속도와 방식이었다. 현장 검증도 제대로 안 거친 채 ‘전면 도입’부터 못 박아놓고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이주호 전 장관의 개혁 의지 자체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지만, 그 의지가 조급함으로 이어졌을 때 누가 대가를 치르는지는 이번 사태가 분명히 보여줬다.

법원은 이번에 본안 판단조차 하지 않고 소송 요건이 안 됐다며 사건을 끝냈다. 발행사들도 이걸로 완전히 물러설 기색은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각하보다, 앞서 예고했던 헌법소원 결과를 “남은 민사소송의 최종적인 가늠쇠”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행정소송에 항소하느냐보다, 애초에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한 것 자체가 위헌적 절차였는지를 헌법재판소에서 다투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는 셈이다. 정부 정책을 믿고 수백억, 많게는 천억 원대를 투자했다가 정책 방향이 통째로 뒤집힌 발행사 입장에서는, 정치적 셈법에 밀려 희생양이 됐다는 억울함을 가질 만하다.

내 생각

나는 방향을 자율 선택으로 되돌린 것 자체는 맞는 결정이라고 본다. 아이들 눈 나빠지는 거, 개인정보 새는 거, 교사들 업무만 늘어나는 거, 이런 우려들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니었으니까.

다만 이 정책을 밀어붙인 사람이 국비 5,300억, 민간까지 합쳐 2조 원, 그리고 9,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걸어놓고, 정작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은 채 다음 자리로 넘어갔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국회가 법을 바꾸고 새 정부의 장관이 그걸 집행하는 사이, 정작 이 판을 처음 짠 사람은 이미 미국 대학 강단에 서 있다. 최교진 장관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는 이미 내려진 결정을 물려받았을 뿐이다. 억울한 쪽은 오히려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했다가 정치적 희생양이 된 발행사들과, 매일 아침 학교 문을 여는 교사들이다.

발행사들이 법정에서, 그리고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론을 받아들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이런 식으로 정책이 뒤집히고, 그 부담이 죄 없는 현장과 기업에만 떨어지는 일은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 새 정책을 밀어붙이기 전에 현장 검증부터 제대로 거치는 것, 그게 이번 사태가 남긴 가장 기본적인 숙제라고 생각한다.

과연 다음 정부는 이 교훈을 기억할까? 나는 그러길 바란다.

이 글은 공개된 보도 및 정부 발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다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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